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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2026년 8월 9일 목회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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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
조회 27회 작성일 26-08-09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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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상처를 받으면 그것을 쉽게 잊지 못합니다. 오늘날 SNS의 ‘분노 문화’는 이해하기보다 먼저 판단하고, 용서하기보다 비난하며, 한 번의 실수를 오래 기억하게 만듭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도 받은 은혜는 쉽게 잊으면서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 붙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라”고 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상처는 돌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복수는 상처를 끝내지 못하고 또 다른 상처를 낳아 과거를 반복하게 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스데반은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거짓 고발을 받고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그는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현장에는 훗날 사도 바울이 될 사울이 서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의 용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용서를 통해 새로운 복음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느냐만이 아니라, 그 상처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입니다. 상처를 붙들면 과거가 반복되지만, 십자가를 붙들고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복수는 역사를 반복하지만, 용서는 역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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