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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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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21.2026 (2026년 2월 1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일차 레위기 6–10장]2026년 2월 10일(화) 아침묵상본문: 레위기 4장 20절, 9장 22–24절제목: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려면레위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무엇이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가?”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죄와 허물의 문제입니다.레위기 4장은 실수로 지은 죄,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죄가 된 행위까지도 다룹니다. 이는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을 얼마나 정직하게 다루시는지를 보여 줍니다.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죄를 드러내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속죄제를 통해 하나님은 “죄가 있어도, 나아올 길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피 흘림은 죄의 무게를 말하지만, 동시에 용서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레위기 8–9장에서는 제사장의 위임식이 진행됩니다.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먼저 자신들을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조차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중립이 아니며, 누구도 스스로 거룩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제사가 마쳐진 후, 결정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여호와 앞에서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레 9:23–24)하나님은 예배에 응답하셨습니다.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아 주신 것입니다. 바른 예배의 기준은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입니다.신약의 빛 아래에서 우리는 이 모든 제사의 완성을 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자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형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습관입니까, 감정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대속입니까?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한다는 것은 나의 의를 내려놓고, 은혜에 의지하여 서는 것입니다.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을 붙드십시오. 그곳에 영광이 임합니다.오늘의 기도거룩하신 하나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면서도용서의 길을 열어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내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참된 예배자로 서게 하소서. 오늘의 삶이 주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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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21.2026 (2026년 2월 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일차 레위기 1–5장]2026년 2월 9일(월) 아침묵상본문: 레위기 1장 1–2절제목: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레위기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옵니다.반복되는 제사 규례와 피의 언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레위기의 첫 문장은 이 책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 1:1)레위기는 규칙의 책이 아니라 초대의 책입니다.하나님은 멀리서 명령하지 않으시고, 임재의 자리인 회막에서 사람을 부르셔서 말씀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인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길을 하나님 스스로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구약의 제사는 잔인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죄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을 가르치는 교육이었습니다. 동시에 그 제사는 또 하나의 사실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나아갈 길을 마련하신다는 것입니다.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는 각기 다른 상황을 다루지만, 공통된 목적을 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정결해져서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여 나아갔습니다.신약의 빛 가운데 우리는 레위기의 제사가 가리키는 궁극적 완성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의 제사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반복되던 제사는 십자가에서 끝났고, 막혀 있던 길은 은혜로 열렸습니다. 오늘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나는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서고 있는가?”나의 열심입니까, 나의 신앙 연륜입니까, 나의 경건한 감정입니까? 아니면 오직 그리스도의 피와 은혜입니까?레위기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합니다.거룩은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길을 믿음으로 걷는 것입니다.한 주의 시작인 이 아침, 주저하지 말고 은혜의 길로 나아가십시오.하나님은 오늘도 회막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오늘의 기도거룩하신 하나님, 죄인에게 나아올 길을 열어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내 의를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을 의지하게 하소서. 이번 한 주도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삶, 예배로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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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07.2026 2026년 2월 8일 목회칼럼입니다.
    어느 신학교에서 졸업반 학생들에게 갑자기 예고 없이 설문조사를 실시합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죄 10가지를 기록하고 손을 들라" 참석한 모든 학생들이 5분 안에 손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지금까지 행한 선행 10가지를 목록으로 만들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죄의 목록을 작성할 때보다 시간이 두 배 이상 더 소요되는 것입니다. 결과를 보고 신학교 교수들이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가장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는 신학교 졸업반도 선한 일에 대한 생각보다 죄에 대한 생각이 2배 정도 많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죄인입니다. 삶 속에서 죄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죄는 ”화살이 과녁을 벗어 난다”는 히브리어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한 것을 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죄가 됩니다. 허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든 마음과 행위를 말하지요.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허물입니다. 사람의 죄와 허물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리 신실한 사람도 그 인생의 95%가 시행착오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32장 23절에서 교훈하셨지요.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지은 죄와 허물대로 즉시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면 이 세상은 당장 지옥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1장 1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은 진실하게 회개하며 돌아오는 영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놀랍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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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07.2026 (2026년 2월 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2일차 창세기 46–50장]1월 31일(토)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50장 20절제목: 끝이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여시는 하나님의 구원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족장 야곱은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고, 위대한 총리 요셉 또한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은 장엄하지만 동시에 쓸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죽음들을 끝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더 넓게 펼쳐지는 문으로 보여 줍니다.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제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이제 요셉이 우리를 벌하면 어쩌지?”과거의 죄책감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대답은 놀랍도록 복음적입니다.“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창 50:20)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감정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그는 고난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의 구원의 파노라마 안에서 보았습니다. 배신은 섭리로, 상처는 생명을 살리는 통로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요셉의 신앙은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통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이 고백은 창세기 전체를 요약합니다.인간의 죄와 실패가 반복되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것을 넘어 구원의 이야기를 이어 가셨습니다. 아담의 타락,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의 기다림, 야곱의 도망, 요셉의 감옥—모든 장면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요셉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창 50:24)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지나온 한 달, 혹은 한 해를 돌아볼 때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마지막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끝을 시작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라고.죽음으로 끝난 듯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약속을 준비하십니다.눈물로 심은 시간 위에,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오늘 하루, 그리고 새로운 시작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십시오.“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이루신다.”오늘의 기도주님, 과거의 상처와 실패마저도 구원의 이야기로 엮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이해되지 않는 시간들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게 하소서.끝이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다시 소망을 보게 하시고,저의 삶이 하나님의 구원의 파노라마 안에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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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07.2026 (2026년 2월 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1일차 창세기 41–45장]1월 30일(금)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45장 4–8절제목: 꿈의 해석자에서 복의 통로로요셉의 인생은 긴 우회를 거쳐 마침내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에 이릅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요셉은 바로 앞에서 꿈을 해석하고,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요셉 이야기의 절정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형제들과의 재회 자리에 있습니다.기근이 온 땅을 덮고, 요셉의 형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옵니다.꿈을 팔아버렸던 형들이, 이제 그 꿈의 성취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충분히 복수할 수 있었고, 과거를 따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달랐습니다.“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사람의 악의 연속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그는 더 깊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배신도, 억울함도, 고난도—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였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 45:8)이 고백은 오랜 신앙의 훈련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요셉은 꿈을 해석하는 사람에서, 자기 인생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망 대신 용서를 선택했고, 복수 대신 생명을 살리는 길을 택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해석되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이렇게 돌아와야 했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헛되이 두지 않으시며, 마침내 복의 통로로 바꾸신다는 사실을.요셉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 꿈을 이루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꿈의 방향입니다.오늘 하루, 과거를 다시 해석해 보십시오.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상처의 기억이 아니라 섭리의 이야기로. 하나님은 오늘도 꿈의 해석자를 꿈의 성취자로, 그리고 복의 통로로 세우십니다.오늘의 기도주님, 지나온 모든 길 위에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합니다.이해되지 않았던 시간들까지도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원망이 아니라 용서로, 두려움이 아니라 순종으로 살게 하소서.저의 삶이 누군가에게 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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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07.2026 (2026년 2월 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0일차 창세기 37–40장]1월 29일(목)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39장 2–5, 21–23절제목: 꿈을 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요셉의 인생은 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꿈은 밝고 웅장했지만, 그 꿈을 품은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형들의 시기와 배신, 애굽으로 팔려간 노예의 삶, 그리고 억울한 누명으로 떨어진 감옥—요셉의 하루하루는 꿈과는 너무도 멀어 보였습니다.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반복되는 한 문장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 39:2)요셉의 형통은 상황의 편안함이 아니었습니다. 노예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요셉은 환경을 통제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주권적으로 이끌고 계셨습니다.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충성스럽게 섬겼고, 유혹 앞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즉각적인 보상이 아니라, 더 깊은 감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창 39:21)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잊지 않으셨습니다.다만 그 꿈을 이루는 방식은 요셉의 예상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높이기 전에 먼저 다듬으셨고, 통치자로 세우기 전에 섬기는 사람으로 빚으셨습니다. 감옥은 꿈이 좌절된 장소가 아니라, 꿈이 성숙해지는 자리였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요셉과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하나님, 주신 약속은 어디에 있습니까?”“이 길이 정말 하나님의 뜻입니까?”오늘 말씀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답합니다.하나님은 꿈을 주신 분이시며, 동시에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이시라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오늘 하루,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하지 마십시오.하나님은 감옥 같은 자리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그리고 그 자리마저도 꿈을 이루는 과정으로 사용하십니다.오늘의 기도주님, 꿈을 주시고 그 꿈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이해되지 않는 자리에서도 주님이 함께하심을 신뢰하게 하소서.결과보다 순종을, 형통보다 동행을 선택하며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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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07.2026 (2026년 2월 4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9일차 창세기 33–36장]1월 28일(수)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35장 1–7절제목: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야곱은 형 에서와 화해했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삶은 여전히 긴장 속에 있었습니다. 세겜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의 가정과 공동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야곱은 다시 한 번 두려움과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게 됩니다.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창 35:1)이 부르심은 새로운 장소로의 이동이기 이전에,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초청이었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도망자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처음 붙들었던 곳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은혜의 말씀이 선포되었던 자리였습니다.하나님은 위기의 순간에 야곱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약속을 다시 기억하게 하십니다.신앙의 회복은 언제나 “새로운 결심”보다 “처음 주신 약속으로 돌아감”에서 시작됩니다.야곱은 가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라.” (창 35:2)벧엘로 올라가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정리와 회개의 길이었습니다. 붙들고 있던 우상들을 내려놓고, 삶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로 맞추는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여정 가운데 두려움을 잠재우시고 지켜 주십니다.야곱은 벧엘에 제단을 쌓고 그곳의 이름을 “엘 벧엘”이라 부릅니다.“하나님, 곧 벧엘의 하나님.”이 고백은 장소보다 크신 하나님, 과거의 은혜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고백이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벧엘로 다시 올라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일어나, 다시 은혜의 자리로 올라오라.”오늘 하루, 바쁘게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잠시 멈추어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약속의 말씀을 다시 붙드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오늘의 기도주님, 위기의 순간마다 약속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벧엘로 올라가게 하소서.처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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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07.2026 (2026년 2월 3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8일차 창세기 29–32장]1월 27일(화)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32장 24–30절제목: 하나님과 씨름하며 새 이름을 얻다야곱의 인생은 늘 도망과 계산의 연속이었습니다.형 에서를 속여 축복을 얻었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속임과 경쟁 속에 살았습니다. 그는 늘 자기 힘으로 길을 만들었고,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형 에서를 다시 만나야 하는 밤에 야곱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그 밤,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독의 자리에서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4)이 싸움은 단순한 육체적 대결이 아니었습니다.야곱의 평생을 지배해 온 방식—속임, 계산, 자기 확신—과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의존 사이의 영적 씨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심으로 그의 힘을 꺾으십니다. 더 이상 야곱은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그러나 바로 그때, 야곱은 이전과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이제 그는 속임으로 축복을 빼앗지 않습니다. 붙들고 매달려 은혜를 구합니다. 이것이 변화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은 대답합니다. “야곱입니다.” 그 이름은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처음으로 자기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고백합니다.그때 하나님은 새 이름을 주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이스라엘—“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이 승리는 힘으로 이긴 승리가 아니라, 붙드는 믿음으로 얻은 은혜의 승리였습니다. 야곱은 절뚝거리며 그 자리를 떠났지만,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야곱이 아니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밤이 있습니다.더 이상 계산으로 버틸 수 없고, 도망칠 길도 없는 자리.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하시기 위해 씨름하십니다.변화는 편안한 자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하나님 앞에 붙들리고, 정직해지고, 약해질 때 시작됩니다.오늘 하루, 하나님을 피하지 마십시오. 씨름하십시오. 붙드십시오.그 밤이 지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새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오늘의 기도주님, 도망자의 밤에도 찾아와 씨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내 힘을 의지하던 방식을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를 붙들게 하소서.절뚝거리는 걸음일지라도, 새 이름을 가진 자로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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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Feb 07.2026 (2026년 2월 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7일차 창세기 25–28장]1월 26일(월)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28장 10–17절제목: 모자라고 부족해도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이삭의 가정사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고, 야곱은 속임으로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리브가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앞당기려 했고, 이삭은 하나님의 선택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채 흔들렸습니다. 창세기 25–27장은 믿음의 가정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연약함과 갈등이 있는지를 숨김없이 보여 줍니다.그 결과, 야곱은 도망자가 됩니다. 형의 분노를 피해 집을 떠나야 했고, 아무 보호도 없이 광야의 밤을 맞이합니다. 그는 축복을 얻었지만, 평안은 잃은 상태였습니다. 바로 그때, 성경은 뜻밖의 장면을 보여 줍니다.“야곱이 어떤 곳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더니…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 28:11–12)놀라운 사실은, 이 장면이 야곱의 회개 이후가 아니라 도망 중인 야곱에게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아직 바뀐 것도 없고, 바로잡은 것도 없을 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동일한 언약을 다시 선언하십니다.“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창 28:15)이 약속은 야곱의 자격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에 근거합니다. 야곱의 인생은 이후에도 곧장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속임을 당하고, 넘어지고, 오래도록 다듬어져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전 과정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신앙의 시작은 “내가 하나님을 붙잡았다”가 아니라,“하나님이 이미 나를 붙잡고 계셨다”는 깨달음입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도 야곱과 다르지 않습니다.믿음보다 계산이 앞설 때가 있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방식에 집착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외롭고 불안한 자리에서 말씀하십니다.“내가 너와 함께 있다.”오늘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십시오.스스로를 정당화하려 애쓰지 말고, 은혜의 주권 아래 자신을 내려놓으십시오.모자라고 부족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들어 사용하십니다.오늘의 기도주님, 연약함과 실수 속에서도 먼저 찾아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내 자격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의 주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도망자의 길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걷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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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Jan 31.2026 2026년 2월 1일 목회칼럼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싸움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지요.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하는 전쟁은 영적 전쟁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보면 “사탄은 오늘도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전투에서 물러서지 말고 신앙으로 맞서서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4 명의 무장강도가 들었습니다. 은행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6일 동안이나 경찰과 대치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인질들은 처음에는 강도들을 무서워합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범죄자들을, 오히려 좋아하게 됩니다.자신들이 범죄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강도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는 병적 증상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범죄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스톨홀름 증후군”이라고 말합니다. 피해자가 범죄자에게 오랜 기간동안 인질로 붙잡히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 인 것을 잊고 범죄자를 따르게 되는 증상입니다. 이런 스톡홀름 중후군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질로 붙잡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죄악으로 유혹하고 불의함으로 핍박하죠. 당근과 채찍이 반복적으로 주어지면 제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도 오히려 가해자인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옹호하게 됩니다. 소위 “영적인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 1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는 세상의 본질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긍휼히 여기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죄악에 빠져서 세상을 사랑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예배로 세상을 분별하고 승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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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Jan 31.2026 (2026년 1월 3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2일차 창세기 46–50장]1월 31일(토)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50장 20절제목: 끝이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여시는 하나님의 구원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입니다.족장 야곱은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고, 위대한 총리 요셉 또한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은 장엄하지만 동시에 쓸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죽음들을 끝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더 넓게 펼쳐지는 문으로 보여 줍니다.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제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이제 요셉이 우리를 벌하면 어쩌지?”과거의 죄책감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대답은 놀랍도록 복음적입니다.“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창 50:20)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감정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그는 고난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의 구원의 파노라마 안에서 보았습니다. 배신은 섭리로, 상처는 생명을 살리는 통로로 재해석되었습니다. 요셉의 신앙은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통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이 고백은 창세기 전체를 요약합니다.인간의 죄와 실패가 반복되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것을 넘어 구원의 이야기를 이어 가셨습니다. 아담의 타락,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의 기다림, 야곱의 도망, 요셉의 감옥—모든 장면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요셉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창 50:24)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지나온 한 달, 혹은 한 해를 돌아볼 때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마지막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끝을 시작으로 바꾸시는 분이시라고.죽음으로 끝난 듯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약속을 준비하십니다.눈물로 심은 시간 위에,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오늘 하루, 그리고 새로운 시작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십시오.“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이루신다.”오늘의 기도주님, 과거의 상처와 실패마저도 구원의 이야기로 엮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이해되지 않는 시간들 속에서도 주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게 하소서.끝이라고 생각한 자리에서 다시 소망을 보게 하시고,저의 삶이 하나님의 구원의 파노라마 안에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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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Jan 31.2026 (2026년 1월 30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1일차 창세기 41–45장]1월 30일(금)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45장 4–8절제목: 꿈의 해석자에서 복의 통로로요셉의 인생은 긴 우회를 거쳐 마침내 하나님의 뜻 한가운데에 이릅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요셉은 바로 앞에서 꿈을 해석하고,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요셉 이야기의 절정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형제들과의 재회 자리에 있습니다.기근이 온 땅을 덮고, 요셉의 형들은 양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옵니다.꿈을 팔아버렸던 형들이, 이제 그 꿈의 성취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충분히 복수할 수 있었고, 과거를 따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달랐습니다.“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사람의 악의 연속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그는 더 깊은 자리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배신도, 억울함도, 고난도—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였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창 45:8)이 고백은 오랜 신앙의 훈련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요셉은 꿈을 해석하는 사람에서, 자기 인생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망 대신 용서를 선택했고, 복수 대신 생명을 살리는 길을 택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해석되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이렇게 돌아와야 했는지 알 수 없는 시간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헛되이 두지 않으시며, 마침내 복의 통로로 바꾸신다는 사실을.요셉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 꿈을 이루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꿈의 방향입니다.오늘 하루, 과거를 다시 해석해 보십시오.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상처의 기억이 아니라 섭리의 이야기로. 하나님은 오늘도 꿈의 해석자를 꿈의 성취자로, 그리고 복의 통로로 세우십니다.오늘의 기도주님, 지나온 모든 길 위에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합니다.이해되지 않았던 시간들까지도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원망이 아니라 용서로, 두려움이 아니라 순종으로 살게 하소서.저의 삶이 누군가에게 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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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Jan 31.2026 (2026년 1월 2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0일차 창세기 37–40장]1월 29일(목)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39장 2–5, 21–23절제목: 꿈을 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요셉의 인생은 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꿈은 밝고 웅장했지만, 그 꿈을 품은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형들의 시기와 배신, 애굽으로 팔려간 노예의 삶, 그리고 억울한 누명으로 떨어진 감옥—요셉의 하루하루는 꿈과는 너무도 멀어 보였습니다.그러나 성경은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반복되는 한 문장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창 39:2)요셉의 형통은 상황의 편안함이 아니었습니다. 노예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요셉은 환경을 통제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주권적으로 이끌고 계셨습니다.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충성스럽게 섬겼고, 유혹 앞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즉각적인 보상이 아니라, 더 깊은 감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창 39:21)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잊지 않으셨습니다.다만 그 꿈을 이루는 방식은 요셉의 예상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높이기 전에 먼저 다듬으셨고, 통치자로 세우기 전에 섬기는 사람으로 빚으셨습니다. 감옥은 꿈이 좌절된 장소가 아니라, 꿈이 성숙해지는 자리였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요셉과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하나님, 주신 약속은 어디에 있습니까?”“이 길이 정말 하나님의 뜻입니까?”오늘 말씀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답합니다.하나님은 꿈을 주신 분이시며, 동시에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이시라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오늘 하루,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하지 마십시오.하나님은 감옥 같은 자리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그리고 그 자리마저도 꿈을 이루는 과정으로 사용하십니다.오늘의 기도주님, 꿈을 주시고 그 꿈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이해되지 않는 자리에서도 주님이 함께하심을 신뢰하게 하소서.결과보다 순종을, 형통보다 동행을 선택하며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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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3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Jan 31.2026 (2026년 1월 2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9일차 창세기 33–36장]1월 28일(수)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35장 1–7절제목: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야곱은 형 에서와 화해했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삶은 여전히 긴장 속에 있었습니다. 세겜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의 가정과 공동체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야곱은 다시 한 번 두려움과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게 됩니다.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창 35:1)이 부르심은 새로운 장소로의 이동이기 이전에,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초청이었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도망자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처음 붙들었던 곳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은혜의 말씀이 선포되었던 자리였습니다.하나님은 위기의 순간에 야곱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약속을 다시 기억하게 하십니다.신앙의 회복은 언제나 “새로운 결심”보다 “처음 주신 약속으로 돌아감”에서 시작됩니다.야곱은 가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라.” (창 35:2)벧엘로 올라가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정리와 회개의 길이었습니다. 붙들고 있던 우상들을 내려놓고, 삶의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로 맞추는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여정 가운데 두려움을 잠재우시고 지켜 주십니다.야곱은 벧엘에 제단을 쌓고 그곳의 이름을 “엘 벧엘”이라 부릅니다.“하나님, 곧 벧엘의 하나님.”이 고백은 장소보다 크신 하나님, 과거의 은혜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고백이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벧엘로 다시 올라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일어나, 다시 은혜의 자리로 올라오라.”오늘 하루, 바쁘게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잠시 멈추어 처음 하나님을 만났던 약속의 말씀을 다시 붙드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오늘의 기도주님, 위기의 순간마다 약속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벧엘로 올라가게 하소서.처음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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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Jan 31.2026 (2026년 1월 2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8일차 창세기 29–32장]1월 27일(화) 아침묵상본문: 창세기 32장 24–30절제목: 하나님과 씨름하며 새 이름을 얻다야곱의 인생은 늘 도망과 계산의 연속이었습니다.형 에서를 속여 축복을 얻었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속임과 경쟁 속에 살았습니다. 그는 늘 자기 힘으로 길을 만들었고,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형 에서를 다시 만나야 하는 밤에 야곱은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그 밤,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고독의 자리에서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4)이 싸움은 단순한 육체적 대결이 아니었습니다.야곱의 평생을 지배해 온 방식—속임, 계산, 자기 확신—과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의존 사이의 영적 씨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심으로 그의 힘을 꺾으십니다. 더 이상 야곱은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그러나 바로 그때, 야곱은 이전과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이제 그는 속임으로 축복을 빼앗지 않습니다. 붙들고 매달려 은혜를 구합니다. 이것이 변화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은 대답합니다. “야곱입니다.” 그 이름은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처음으로 자기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고백합니다.그때 하나님은 새 이름을 주십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이스라엘—“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이 승리는 힘으로 이긴 승리가 아니라, 붙드는 믿음으로 얻은 은혜의 승리였습니다. 야곱은 절뚝거리며 그 자리를 떠났지만,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야곱이 아니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밤이 있습니다.더 이상 계산으로 버틸 수 없고, 도망칠 길도 없는 자리.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롭게 하시기 위해 씨름하십니다.변화는 편안한 자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하나님 앞에 붙들리고, 정직해지고, 약해질 때 시작됩니다.오늘 하루, 하나님을 피하지 마십시오. 씨름하십시오. 붙드십시오.그 밤이 지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새 이름을 주실 것입니다.오늘의 기도주님, 도망자의 밤에도 찾아와 씨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내 힘을 의지하던 방식을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를 붙들게 하소서.절뚝거리는 걸음일지라도, 새 이름을 가진 자로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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